지루하게 기다리던  귀국명령서가 떨어지던날 우린 너무나 기뻣지 부관부에확인하곤

기분이 날아갈듯했어 이부서 저부서 다니며 신이나서 떠들고 다녔지

 

푹푹찌던 더위도 아랑곳하지않고 돌아다니며 인사하기 바빳지 부상당하지않고

여태까지 버텨온것만으로도 우린행운아야..하루종일 인사로 하루를 보냈어

하루가지나니 서서이 겁이나기시작했지 20여일 후면 귀국선에 오르는데 조심하자고 다짐을 하며

몸조심하기에 들어갔지

 

귀국명령서 받아놓고 전사한 전우들이 한둘이 아니였거든 날자만 떨어지곤 그날까지모든 작전은

수행해야했거든 마음들이 들떠있어 주의가 산만해진채 작전에 투입되면

필경 부상이나 전사하는것을 우린 수없이 봐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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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하게 강요하든 군대말뚝을 뿌리치니 본대로 귀대명령이 떨어졋지

이제2년을 채웠으니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거든...말뚝을 박고 월남에 잔류하던가 귀국하던가야.

선발대로 온 전우들은 모두 하나같이 귀국하기로 결정했어 얼마나 귀국하고 싶었는데...

 

웬티와 어떻게 헤어지나만을 골돌이 생각했지 대안이 없었어 보면 측은하고 사랑스러운데..

귀국명령 떨어질때까지 최선을 다하자 생각했지 정떼는 방법을  아무리 연구해도 답이안나와

그래 설득해보자 귀국해서 제대하고 민간인으로 다시오겠노라고..

 

그땐 한국회사들이 많이 진출해있었거든 웬티도 잘알고있고 현지사무실에 취직하고 싶어 했을때야

인사과에들러 확인해보니 3 개월만 더 있으라는거야 월남어 교육이수생들이 한꺼번에 빠지니

3개월은 보충해야 된다는거야 모두들 기다리기로 했지 덕분에 군생활 6개월 오바 했어

 

한진 공영 PN& 회사등 월남에서 활발하게 사업을했지 우리 월남어 통역병들을 스카웃하려고

꽤나 회유했지 한국회사들은 800$정도 제시하고 미국회사들은 1200$을 제시했지 지금생각하면

왜그때 응하지않았나...나뿐이 아니라 모두들  귀국하고파 안달을 했었거든..

 

뀌녕(퀴논) 일대는 완전히 평정 되었지 상거래도 자유스럽고 무장을 하지않고도 자유로이

다닐수 있었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야  바닷가 정취며 야자나무가 빼곡한 해변을 걷는기분은 

웬티와 팔장끼고 다니던 생각하면  언뜻 지금도 달려가고픈 마음이 솟지...

 

한진회사는 운송을 했지 미군 군수물자를 싣곤 보급기지까지 도착시켜주는거야

전투지역을 통과해야 되기때문에 무척위험하여 처음에는 맹호부대가 에스코트도 해주었지

우리가 도로를 경계도 서주고 하여간 맹호덕을 톡톡히보아 한진과 자매결연도 맺었지..

 

길에서 만나면 하나같이 차에서 내려 서로 눈물로 포웅하며 서로의 무사함을 빌어주곤했어

그때의 동포애만 같으면 아마 지금처럼 아귀다툼은 안할거구먼....

공영회사는 토건업을 했는데 얼마나 밤낮없이 일을하는지 미군과 외국사람들이 한국민의

근면과 부지런함에 혀를 내둘렀어....

 

푸캇비행장을 공영이 맡았지 야전비행장이였는데 데리바리가 6개월이야 이일을 밤낮으로 

3개월만에 뚝딱해치운거야 양놈들은 공정기일 안마추면 돈안주거든..전시라 비행장이 빨리

완성되어야한다는 설득에 양놈들이 지불했다는 일화는 우리국민들의 부지런함을  여실이

보여주는 대목이었지 아마 그이후 현대등 여러회사들이 월남특수를 무척누렸을거야...

 

웬티가 본대근처에서 기다리고있어 가봐야돼 얼마 남지않은시간 잘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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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20일 마다 귀국하는 병사들이 생기지

파병된지 일년이 되면 자동으로 귀국 명령이 떨어지지....

 

월남 전쟁터에서 꼭 필요로하는 병사나 또는 연장 지원하는 병사 외에는 

모두 귀국명령을 받고 본국으로 철수하는거야..

우리같이 월남어 교육받은 병사는 의무적으로 2년은 있어야 했어...

 

처음 일진으로 파병된 전우들은 귀국하지못해 안달을 했는데 이진으로 온 병사나

보충병으로 온병사들은 의외로 연장 지원하는 병사가 많더라구..

적의 총성 소리를 많이 들어본 병사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연장 신청하면 무조건 환영했지

 

일차 귀국한 전우들도 다시오는 전우들이 종종 있었어  아마 월남에서의 생할이 본국에서는

적응이 안되었나봐..

처음 귀국하는 전우들은 귀국 BOX 가 뭔지도 몰랐어.보충병력이 오면서부터 입소문이났지

무었을 가져가면 돈이 된다는둥 뭐든지 많이가져가면 돈이라는둥..BOX 가 생겨났지..

 

의례 귀국하는 병사들은 따훌빽은 제쳐두고 나무상자로 만든 BOX로 물건을 가득채워서

본국으로 귀국하곤했어..

전투부대외에  지원부대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물건 구입하기가 그런데로 쉬웠지만

전투부대 병사들은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들었지..

 

제일 인기품목은 흑백테레비 24" 이었지 RCA24" 는 147 $ 정도했지 (환율270 대1)

그때 돈으로40,000원정도였지 한국에선 200,000 원정도했거든

이거 한대 가져가면 팔자고친다는 소문이 꽤나있었지..병사들 대부분은 그림의떡이었지

 

장교분들은 그런데로 부하명의로 몇대씩보냈지만 일반 병시들은 선풍기 라디오,

시계.등이  고작이고  BOX 를 채우려고 양담배 비누 커피 초코렛 등으로채웠지

내가 소속되어있던 5중대 전우들은  그런데로 원하는 물건을 사다 줄수가 있었어

 

양놈 PX 에는 리차드 대위가 있어서 뭐든지 원하는데로 살수가있었거든

주로 라디오와 녹음기 선풍기 등이 인기가 있었지..

그시절 한국에선 라디오도 무척 귀하던때야 샤넬 5번 향수와 불란서 코티분은 정말 인기있었지

 

분바르던 시절인데 냄새가 기가막혔거든 장농에 코티분을 넣어두면 온통 향기로운 분냄새로

넘쳐났지 샤넬5번향수는 몸에 조금만 뿌려도 온통 그냄새는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었어

귀국하는 내 전우들의 부탁은 무슨일이 있어도 해결해주었어. 참으로 그땐 신낫었어

 

삶과 죽음을 같이한 전우들이 속속 귀국하니 쓸쓸함과 외로움이 한없이 밀려 오드라구

이제 얼만큼 잘버텨서 사지 멀정하게 귀국하느냐만 생각 되드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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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타가 쉴사이없이 날라온다

부상병을 옮기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바삐움직인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또 날라간다 중탄산 일대에서 크게 적과 맞닥뜨린 모양이다

콘셑으로 지은 야전병동은  에어콘도 들어오고 시설은 그런데로 괜찬았다..

다만 부상당한 전우들의 울부짖음만 가슴을 도려내듯 메아리 쳐온다

 

한참 교육을 받고 있을때다 내가있던 2대대가  맹호작전(사단작전) 을수행중 적들과

치열하게 맞붙어 적과 조우하다 부상병이 계속 발생하여 헬리콥타로 후송한다는 말을듣곤

그냥 있을수가 없었지 5중대 전우들이 당하여 올가봐 무척걱정했었지..

 

휴식시간만 되면 달려가서 확인하곤 다시오곤 몇번이나 그랬는지몰라

다행이 우리중대 전우들은 두어사람 밖에없었지 박격포탄에 맞은 전우 

부비츄렙을 밟은 전우 총알이 어깨나 허리를 뚫고 지나간 전우등 참으로  부상자가 많았지

눈에붕대를 감은 전우들도 꽤나 있었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울가...

 

차라리 적총탄에 맞고 전사하는것이 났다고 모두들 그랬지 적들이 조준 사격을 많이하니까

머리부위를 맞는 전우들이 많았지.그때하도많이 머리 수술을 해봐서 지금도 수원의

성모병원은 뇌수술은 알아준다고 소문이 날정도였거든..

 

이튼날 사령관이 어제작전중 후송당한 전우들 문병을 오셨지 그아픔속에서도

사령관에게 격례하는 모습을보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어.

왜 우리가 이국땅에서 이처럼 죽거나 부상을 당하며 싸워야하는건지...

 

그땐  그누구도  국가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지

지금생각하면  멍청한 생각이라 하겠지만 그땐 우리가 싸워야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지

근데 이렇게 허무하게 철수를 하고보니 그시절을 겪은 우리로선 도져이 용납이 안됐어

 

지금도 보훈병원엔 그때부상당한 전우들이 신음하며 치료중인 전우들이 꽤나 있지.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도 대부분인데 정부에서  이젠 먹고살만 해졌으니 나라를 위해

몸바친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상처라도 치유해주었으면 좋겠어...

 

밥그릇 싸움하며 챙긴거 이젠 플어야만 우리사회에서 함께할수있도록 우리들 스스로

감시하며  노력하고 참여해야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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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하는 나라가 이처럼 평온하고 고요할수가 없어민간인들도 활기차게

생업에 종사하는듯했고 피난민들이 정착촌으로 수없이밀려와

계속 난민촌을 형성하고 있었지.

 

뀌녕 시내에는 전쟁 특수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각처에서몰려왔어

월남 수도싸이공 다음에 제일 안전하며 평온하다고 소문이났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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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덕분에비무장으로 활개를 치고 다닐수가 있었어

인력거(사람이삼발이 자전거로태워주는車)도 타보고

람브레다(삼발이車)를타고 시내 일주도 하며 여기저기 구경을 했지

 

월남친구가 잘아는 치과병원(무허가집에서 차려놓고)엘 갔어

앞이가 토끼잇발이라 고르게해준다고하길래 좋다고 했지

참으로 기술이뛰어났어 그때교정한게 지금도 끄덕없거든...

셀렘담배 두보루 주니까 이놈 좋와서 어쩔줄 몰라하더라구

그때월남에선 셀렘담배 한보루에 5$ 씩이나 했거든. (1$ 이면 우린 살수있으니까)

 

해변가로 나가면 문둥이 촌이라고 있지

휴양지야 불란서때 나병환자를 치료하기위해 지어놓았는데

지금은 환자는 전혀없고 경치가 수려한 관광지가 되었다드군

전쟁중인데도 아베크족들이 간혹 보이드라구

양놈들은 이근처에다위안소를 크게지어놓고 즈끼리만 즐겼지

패스만 있으면 누구나 통과가 돼 ...

 

리차드가 만들어준 패스를 요긴하게 써먹지

위락시설안에는 갖가지 오락 시설과 완벽하게 건강 검진을한 위안 여성들이 꽤나 있드군

우리전우들은 가끔 외출이 허락되는데

전쟁터에서의 객고를풀다보면 

그무서운 병균을 얻어와선 고통스러워 하는전우들도 꽤나있었어

그래서 외출하는 병사들에게 마이신 몇알씩 의무적으로 착용하게했지

페니실린이 워낙군대용은 쎄서 한방에 떨어지더라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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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온하면 근방이라도 전쟁이끊날것같은기분이었지

맹호부대가 이동이라도 할라치면 촌락민들이 데모도 해주곤 했지

우리는 맹호를 환영한다는 푸랑카드를들고 시위를 하기도 했어.

대민관계도 좋왔구 적들도 우릴 피하고 이렇게 잘나갔었는데

왜 패전이 되었는지 지금생각해도 미스테리야..

 

미군들이 계속 증파되고

캄보디아 국경 쪽으로 월맹군이 남하한다는 정보가 계속 올라왔지

미군들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폭격을 시작했지

그무서운 고엽제도 살포하고..

하늘에서하얀 연기같은게 비행기에서 뿌려졋는데

아마 그게 고엽제였나봐.

 

지금 고엽제 환자들이 무척많은데

무슨 후유의증이라눈둥 분명 연관이 있는데도

정부에선 먼산 쳐다보듯만하니

참으로 우리나라는 이상한 민족이야

국가를 위해목숨을 바쳐도 공직에있는 분들이 내일같이 생각을 안하거든

하루빨리 정신좀 차렸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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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케로가는 길목에 차리포대가 자리하고 있었지

월남인 복장을하고 파견대 찝차로 포대 정문으로 들어서니

위병들이 받들어총을 하드라구 한국군 찝차에

월남인 민간평상복 까만 복장을 했으니  어떤놈인지

알수가없으니 받들어총을 할수밖에

정보부대 파견대에서 왔노라고 하니

무조건 포대장실로 안내하드라구 운전병놈이 씽긋웃으며

유병장님이 높은사람처럼 보인다고 낄낄 거렸지...ㅎㅎㅎ

 

포대장님이 무슨일로 왔냐고묻길래 소속부대를 알리고

친구좀 보러왔다고 하니 껄껄 웃어 주드라구 한국같으면

어림도없는 일이지 월남에선 서로가 아껴주니까 가능했어.

맥주한박스를 포대장님실에 놓고 길성이근무하는 상황실로가니 이놈이 얼마나 놀래는지..

마침 식사시간이라 C-레이숀을 까먹고 있드라구가져간 맥주로 전우들과함께마시곤  외출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구실을 만들면 가능하다기에 며칠지난뒤 만나기로

약속하고돌아왔지...

 

전쟁터라 왼만한 일엔 높고 낮음없이 왼만한 일들은

눈감아주거든 그래서 맥주정도는 음료수라 생각하고

부대내에서 조금씩 마실수가 있어

워낙 더운 나라니까 음료는 자주 마시거든 그래서

높은분들이나 고국에서 방문 하는 분들은 인사로 맥주를

몇박스씩 주고들 가거든 야전 PX 에도 맥주는 떨어지지 않치

그러니 신나게 마실수가 있어...

 

파견대로돌아오니 포로수용소에 용의자들을

가득 잡아다 놓았드라구 정기적으로 작전 지역을 소탕해서

수상한 놈들은 무조건 잡아와서 심문해보고  내보내거든

여자들이 반은 넘어...

이나라는여자들 천국이야 워낙 긴세월 전쟁을 하다보니

남자들 씨가말라 여자들의세상이 되고 있었지 왼만한 남자놈은 여편네를 대여섯명은 거느리고 살지

그래도 질투나 시기같은것은 안보이드라구

그러니 이놈들 힘을 너무 빼서 오래살진 못할거야..ㅎㅎ

 

길성이가 외출을 나와 뀌녕으로 향했지 우선

휴양지 문둥이촌을 구경 시켜주고 뀌녕 해변에서

시원한 맥주몇병 마시고 리차드 대위가 만들어준 패스로

양놈들 기지촌으로 가서 여러가지 구경하고

즐거운 한나절을보냈지

전쟁터에서 이렇게 친구와 만나 술한잔 한다는게

실감이 안나드라구.. 적이기습을 할때는  주로 박격포로

선제공격을 시도하니 침착하게

외각 개인호나 교통호로 피하여 엎드리라고

3발정도는 한곳으로 탄착점이 구성되니 움직이라는

명령이 내려도 3발이터질때까지는 절대움직이지말고

엎드려 있어야 된다고 일러주곤 

여러가지 총알을 피하여가는 요령등 어떻게하면

살아남냐는 방법을 경험그대로 일러주었지...

포대까지 내려다주곤  파견대로 왔어..... 

 

하루이틀이 지났는데도 온통 친구생각 뿐이야

적응은 잘하고있는지 간밤엔 습격은 없었는지

아침마다 무전실로가서 포대를 불러냈지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하곤 했어 양놈들 무전기는 정말 잘들렸어 이성능좋은 무전기를 양놈에게 받아내느냐고 

채명신 사령관이무척이나 졸랐다고 하드라구 .

맹호부대는 죄다 이무전기로 작전을 수행했거든

쟝글 지역에선 정말 잘들리는 무전기였지...

 

이제 소강상태였든  전황도 바빠지려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포성소리가 가깝게 들리는것을 의식하며 잠을 청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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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가 세차게 퍼붇다가  언제그랬냐고 햇빛이 강열히 내리쬐는 한나절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소리가 귓전을 거슬리지만 시아스타 타임이라 모두들

잠에 젖고있지 이곳에온지 일년이 넘으니 이젠 이곳문화에 젖어들고 있는 중이거든..

 

나른하게 한식경 자고나면 가슴과 등짝엔 온통 땀방울로 범벅이되지

야전 물탱크 샤워꼭지에 머리서부터 쏴~하면 그시원했던 추억은 지금도 안 잊혀지지

 

제2진들이 도착된지도 꽤나 시간이 흘렀지 우리부대들은  모든 진지와 전술 훈련을 점검하고

언제 어떻게 기습을 와도 대처할수있게 만반의 준비태세에 임하고 있었지...

 

그동안 수많은 전투를 하면서 쌓은 전공이 이젠 세계적으로 맹호부대의 위상을 무척이나 높혀놨지

각국의 참전 중대장 들이 우리맹호부대 전술 기지로 와서 며칠 밤을 새워가며 공부해 갔거든

오는 놈들마다 원더풀을 연발하지 완벽한 중대전술기지에 혀를 내두르면서...

 

빈딘성 일대와 한국군이 진을 친곳에서는  절대 조우하지 말라는  적들의 비밀 문서가

심심치 않게 발견 되었지 부대단위로 수색작전을 나가면 그수많던 베트콩들의 모습은

볼수가 없었지 혹시 큰습격 작전을 위해 준비중인것은 아닌지 우리정보 부대에선  신경을

곤두세우고 첩보활동을 강화 했어...

 

워낙 큰전투에서 패한 월맹군과 지방 베트콩들은  노골적으로 우릴 피했지 그당시엔 빈딘성이

제일 평화로웠지 가는곳 마을마다  만호~만호 를 외치며 환영 해주드라구..

그 긴장했던 모습들은  찾아 볼수가 없고 각 부대마다 휴양지에는 전우들의 휴양하는 모습으로

가득했지 그즈음 미국에선 반전시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대..

 

날찾는 무전이왔다고 연락실 통신병이 뛰어왔지 아직까지 파견대장이 없어 내가 왕초였거든

새로부임하는 장교가 하루이틀 늦고 있었지 ..뜻밖에 둘도없던 친구 길성이의 목소리야

이놈이 월남을 온거야 챠리포대 무전병으로 왔다드군..

 

포병은 후방이라 안심은 했지만 혹시라도 습격을 받으면 골로 가는 수가 있거든 정말 반가웠지

이놈 만나던 얘기는다음에 할게.. 보병을 지원하는 포병은 상황실이 중요하거든 보병에 파견돼있는

FO 장교가 화집점을 상황실에 보고하면 각포대에 전달하여 최고로 빠르게 포사격을 유도해야 되거든

 

이런 자리에 길성이가 무전병으로 온거야 ..

내가 친구들보다 제일먼저 월남에 왔지 우린 5인의太陽 이란 학교 다닐때부터 뭉쳐다녔지

내가 월남에서 죽자살자 할때 고향 집을 지어준 놈들이지 흙 벽돌을 보름동안을 찍어 말려

오양간과 행란채가 딸린 번듯한 흙벽돌 집을 지워주어 부모님들도 대견해 했지 ...

 

죽을지도 모르는 놈을위해 월남간 친구 집을 지워준 놈들이야  (얼마전 허물고 없어젖지만)

한놈 용선이는 세상 싫다고  천당 몇호실에서 먼저 기다린다 했고 . 네놈들만 남았지.

모두들 씩씩하게 살아서 한놈은 경찰로 퇴직하고  한놈은 아직 선생질하고  길성이 놈은

지난 토요일 선생 퇴직해서 퇴임식장에 갔다왔지..

 

이런 망할 놈들이 월남에 왔으니 어서빨리 만나러 가야지..죽지않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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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촌 전략촌에 트럭으로 쌀을 가득싣고 전달하는데 따라갔지

이젠 맹호부대의 진실을 알아서인지 주민들이 무척 반가워했어 예전처럼 경계의눈빛은

보이질 않더라구 조그만 학교에는 학생들이 넘쳐났어 소문이 꼬리리를 물어 촌락으로 이주하는

민간인들이 무척 늘어난다고 촌장이 싱글벙글이야...

 

위생병이 주민들의 의료진찰을 하고있는동안  난 학교에서 여선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했지

어떻게 여기까지와서 근무하냐고 물어봤지..  반 호안티 라는 여선생은  부모님들이 모두

베트콩 들에게 무참이 살해되었다드군  미군부대에 노무자로 생활했는데 어느날 마을로 베트콩들이

내려와 적에게 동조한다고 가족들을 모두 살해했데 빨갱이들의 만행은  어딜가나 비슷한가봐...

 

혼자 살아남아 이곳으로 추천받아 선생을 하고있다고 하드군  너무나 측은해서 내가 차고있던

세이코 시계를 선물로 주었더니 너무나 고마워하드라구 난 뭐든지 남을 잘주어 학교다닐때는

변또 젓가락을 친구에게 준적도있지 프라스틱에 무슨 그림이 있던 젓가락이야 그땐 신기했던

물건이었지...덕분에 어머니에게 작살나게 매도 무척맞았지...

 

파견대로 돌아오니 5중대에 같이있던 전우가 찾아왔지 이전우는 귀국했다가 다시온 전우야

그땐 다시온 전우들은 어느부서에든지 환영했지 전투경험이 풍부하니 여기저기서 데려갈려고했어

서울엔 시내도로에 육교라는것을 많이 만들어 사람들이 구름 다리위로 다닌다고 신기해 했지..

 

이전우가 나에게 부탁을 하드라구 미군 PX 에서 셀렘담배를 사달라고 하드라구 의아해 했더니

귀국해보니까  너무나 황당해서 다시 지원 했다더군 전투부대에서 죽을힘을다해 살아 돌아갔더니

고생했다는 소리는 안하고 돈은 얼마나 벌었느냐구 보는사람마다 묻더라는거야...

 

봉급받는것은 모두 한국으로 송금했지만  얼마나 큰돈이 되었냐구 반문하더라구..약이올라 다시가서

돈좀벌어보자고 왔다드군 ...

 

한국군 에게는  미군 PX 에가서 물건을 살수있지만  레이숀 카드라는게 있지 이카드에는 전자제품은

한가지씩 그리고일반 생할용품은 몇회로 제한이되어있어 담배 같은물건은 다량으로 살수가 없었거든

리차드 대위와 (PX소장) 친했던 나는 레이숀카드 없어도 프리로 사용할수가 있었지...

 

셀렘담배는 한보루(10갑) 에 1$ 을 했어.. 이게 시내에가면  3 $ 을받을수있으니 큰장사가 되는거야

많이사면 의심하니까 10보루정도만 사서 전해주곤 했지 열두어번만 장사하면  한달 봉급이 생기니까

무슨수단을 써서라도 사려고 하지만  한정이 되어있어 전우들은 안타까워 했지...

 

처음부터 재물에 욕심이 있었다면 우린 모두 죽거나  부상당했을거야 다행이  다시온 전우들이

얼마 않되어 그렇게 염려할정도는 아니였지 삶과죽음을 같이했던 전우 부탁이라 허물없이 들어주었어

몇번들어주었지 그런다음 이전우는 다른곳으로 전출했어 무척고맙다는 인사도 함께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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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충병력이 오는 날이야

매달 20일마다 보충병력이 한국에서 도착하지

우리가 맹호 선발대로 오면서 3개월 후부터는  전사자나 부상병을 대체하기위해서

보충병력이 오고있었지...

 

보충대로 가보니 잔뜩 긴장되어 있는병사들이 따홀빽을 들고 대기하고 있드군 

각부대로 팔려나가는 병사들을 보면서 고국의소식을 듣곤했지..

귀국한 병사들의 소식을듣고 와서 기본 자세는 되어 있드라구 가끔 귀국했다가 다시오는

병사들도 꽤나 있었지..

 

새로온 보충병들은 부대배치를 받으면 소정의 전투교육을 받았지 판랑으로(나트랑부근) 가 있을때야

매복작전에서 걸려든 포로?p명을 야자나무에 매어놓곤 보충병들 담력키우려고 총검술을시키지

멀정이 살아있는놈을  착검을 해서 찌른다고 생각해봐 차마 눈뜨곤 못봤지. 그래도 선임병들은

그일을 시키지 다 이유가 있어서야....

 

우리매복조가 적의 매복에걸려 분대병력이 전사한 일이 있었지 온통 사지를 찢어 여기저기 걸어놓은걸 보곤

우리전우들은 반은 미쳐 있었어 그후론 일말의 동정은 없어졌지 모두다 상대적이야

허벅지를 찔러보기도 하고 히프를 찔러보기도하지..이런글은 안올리려고 했지만

 

작금 무슨 다큐물이 까페에올라와 꼭 해명은 해야되겠더라구.. 우린 처음엔 베트남 사람들에게

무척이나 우호적이었지 포로들에게도 무척 잘 대해주었어..작전을 하면서 우리의 희생이 늘면서

적들의 용의주도한 작전에 말려 선하게 대했던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이에는 이...

 

하는식으로 대처하다보니 서로의 골이 깊어진거야..신참들의 총검술을 보면서도 아무런 죄의식과

양심같은것은 못느꼈어.한놈의 적이라도 더 죽여야만  우리가 살아남는다고 생각했거든.....

 

귀국하고보니 제대하는 병사들은 괜찮은데 잔여복무가 남은 병사들은 한국에서 적응이 안되어

다시 월남으로 오드라구. 가난햇던 현실이 차츰 낳아지기 시작했지 사회에서 인식도 월남가면 돈번다는

풍조가 번져 얼마나 고생했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벌었느냐가 인사라고 하드군....

 

이런소리가 제일 듣기싫었다고 다시온 병사듣은 한결같이 이야기 했지.난도무지 이해가 안되드라구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픈 마음인데 갔다가 다시온 병사는 뭐고 돈번다는 소리는 뭔지

하여튼 찹찹한 마음으로 파견대로 돌아왔지..

 

웬티가 키타를치며 소랜트로 노래를 부르면 어느덧 나도 같이 따라 부르지 베더이 키마이 똑꼰싼싼

베더이 보이마우 죠응앙 랑탕   베더이네 깜쏭 찌엑투엥혼~~~ 컴백 투 쏘랜트로 노래를 월남어로

부르는거야  명곡이니까 월남 여학교에서도 음악시간에 배웠다드군..

 

멀리서 들려오는 포성소리를 들으며 야자나무에 그네를 매고 노래를 부른다는게 참으로 상상이 안되지만

우린 시간만 되면 같이노래하며 하루를 보내기가 일수였지 요즈음은  웬티와 함께하는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어 간혹 낌따이 극장에가서 영화도 보곤 했어 사령부 식당에 데려가서

A-레이숀도 먹여주고 대민 사업장에가서는  웬티의 도움을 받으며 월남인들과 함께 어울렸지

 

부대 이동만 없으면 그런대로 귀국못한 고독함을 달랠수 잇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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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하이 1연대 연병장

김정은 준장 님과  전성각 대령 님의 이취임식이 있었지.

우리 와 함께오신 김정은 준장님이 진급과 동시에 귀국하시고 새로이 전성각 대령님이 취임했어

온화하셨든  연대장님이 떠나시니 왼지 마음이 서운해지더라구..

 

새로오신 분은 첫인상이 호랑이 상이었지 호랑이 부대에 아주 꼭맞추었구나 생각되었지

주위에서 함께했든 전우들을 일일이 악수하며 석별을 나누며 김 준장님은 떠나셨어

 

고보이강 작전때야 고보이강 늡지에서 우리5중대는 적에게 밀려 반나절이나 고립했었지

대대장 이필조 중령과 함께 헤리콥타로 우리상공을 맴돌며 김광마 병장이 (진급해서 하사가 됨) 

AR 자동소총을 들고 베트콩과 육박전으로 맞서는것을 내려다 보시곤 무전으로 야자나무 밑 의

병사를 구출하라 !!  

 

다급하게 외치며 안절부절 하시든 목소리가 무전기 옆에 있든 내귓전을 무척이나 때렸어

병사 한사람 이라도 희생되게 할수없다는 지휘관의 철저한 병사 사랑이 김광마 병장을 살린거야

 

작전이 끝난 한참뒤 다행히 운좋게 살아남은 김광마 병장은 그때의생생한 전과로 미국훈장

(은성무공훈장) 을 목에거는 영광을 얻었지 처음이라 미국에서도 귀한 훈장을 한국군 사기를

위하여 내린것 같았어.. (미국훈장은  금성 다음 은성이야)

 

새로오신 분도 부대의 용맹함을 칭찬하며 혁혁한 전공을 쌓아놓은  선배님의 뒤를 이을테니

전 병사들은 사기충천하여 필승을 다짐하자고 호랑이같이 표호 했었어...

 

푸캇 파견대로 돌아오니 무지무지한 쓸쓸함과 고독함의 연속이었지 일차로 온  전우들은

모두떠나고 그나마 의지했든 서대위 마져 떠났으니 누굴 의지하며 의논하고 결정해야 하나...

자연히 맥주잔 기울이는 시간이 많아졌지 그전엔 항상 전우들이 전투 중 잘 못될가봐

전장터로 자원해서 뛰어가곤 했는데.. 이젠 도져이 자신이 없어졌지..

 

채명신 당번으로 뽑혀간 한해선배 완수형도 귀국한다고 연락이 왔었지 죽지말고 꼭살아서

돌아 오라고 앞 뒤 안가리고 뛰는 니가 염려된다며 약을 올리고 가드라구...

 

이젠 높은분도 당분간 없어지고 모든게 내뜻이고 결정이야 .. 새로온 신참 내기들에겐 적절이

교육시키고 다둑거리면 되었어 전투 지역에서 파견 요청오면 쫄병들로 보내주었지..

외롭다 생각되면 웬티가 꼭 오드라구 이젠 서로가 교감 같은게 생겼나봐...

 

전우들이 떠난 나의쓸쓸함을 이젠 웬티에게 의지하며 생활해야지.....일년동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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